"엄마, 이거 봐봐"

올 봄 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 온 봉지를 쓱 내밀기에 보니 어른 손바닥 길이만한 모종이 들어있었다.

"이게 뭐야?"

"응. 이거 피망이래 피망. 화분에다 심어서 물 열심히 줘야 된대"

작년에 가져온 가지모종은 영 관심을 주지 않아선지 열매도 채 맺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여 올해는 기필코 열매를 맺어보리라 다짐하고 있던 차에 피망이 아이 손에 들려 온 것이다.

우리 집에만 오면 죽어나가던 화분들과 달리 피망은 특별대우를 받았다. 햇볕이 잘 드는 명당자리에 두고 바람도 쏘여 주고 흙이 말랐다 싶으면 아이들을 불러 물도 한 바가지 부어주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더니 드디어 하얀 꽃이 피기 시작했다.

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꽃이 피고나면 피망이가 열릴 거야." 라며 자신 있게 해준 나의 설명이 무색하게 꽃만 피고 지더니 열매는 맺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실패다 싶어 마음 속으로 반쯤은 포기하고 있던 차에 꽃이 떨어진 자리에 콩알만 한 피망이 하나 맺혔다.

"얘들아~ 여기 와봐. 피망 열렸어. 귀엽지? 너희들이 사랑도 주고 물도 주고 햇볕도 쪼여줘서 이렇게 열린 거야."

"이게 피망이야? 우와~" 난생 처음 무언가를 키워 결실을 맺어 본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하며 너희들이 잘 키워서 열매가 맺혔다 하니 어깨를 들썩거리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내 또 잊혀졌다. 돌아서면 잊고 까불어대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거기다 올 여름 더위를 지나오면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판에 나 역시도 피망 따위를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역시 초심을 유지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더위가 한풀 꺾일 무렵에서야 생각나 들여다본 피망은 이파리가 축 쳐져서는 시들해 있었다. 얼마나 덥고 목이 말랐을까.
미안한 마음에 물을 듬뿍 주고는 “쑥쑥 잘 커라. 그 동안 못 살펴서 미안해.” 하고 한 마디 건네니 꼬맹이도 따라와 “뚝뚜(쑥쑥) 잘 커라.” 라며 다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꼬맹이의 덕담을 알아들은 걸까. 지금 아기주먹만한 꼬마 피망 5개가 반질반질 윤을 내며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때가 돼서 이렇게 결실을 맺은 걸까. 아니면 나와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일까. 둘 다 이겠지만 나는 후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때가 돼서 열매가 맺은 거라면 작년에 가지가 그렇게 죽어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도 똑같다. 다수의 사회구성원이 지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조정하지 못하고 소수 이익집단의 뜻대로 흘러가든 말든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속에서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이 펼쳐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위정자의 존재 뿐만 아니라 진짜 주인인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채찍이 없다면 올바른 정치는 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투표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누구에게나 부여된 권리이자 우리가 이행해야할 의무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정치후원”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정치 참여 방법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정치후원금 제도는 소액다수의 후원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후원할 수 있는 연간한도액은 물론 정치인이 모금할 수 있는 금액 상한선도 법으로 정해져있다. 또한 법인이나 단체는 후원금을 낼 수 없도록 되어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소수의 기업이나 부자가 건넨 거액의 정치자금이 정치인에게 흘러들어간다면 부패는 필연적이다.

소액다수의 정치후원을 받은 정치인일수록 큰 손의 이익집단이 보내는 검은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쉬울뿐더러 그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다수를 위한 정책결정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유권자가 한푼 두푼 보낸 후원금을 받고서는 이들의 뜻을 쉽게 저버리기 힘들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정치후원금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뿌린 투표와 정치후원금이라는 조그만 씨앗이 자라서 어떤 열매로 보답할 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을 것이다.


부산강서구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임 장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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