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동포 강제송환 반대해 온 지사님에 감복"

 
 
"혹시 '다따가'란 단어의 뜻이 뭔지 아세요?", "사실 저는 그런 대로 우리말에 대해 자신 있다고 여겼어요. 그러나 60여년이란 분단의 장벽은 세종대왕의 한글도 서로 다른 뜻으로 표현되게 만들었는지…. 한국에 정착한 지 어느덧 3년째이지만 아직도 남북한 언어 차이를 실감합니다"

북한이탈주민으로 수원시청에 근무하는 권화옥(46) 씨는 지난해 KBS 1TV ‘우리말 겨루기 추석 특집 방송’에서 우승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말에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말 달인’ 도전에 나갔다가 실패한 단어는 ‘난데없이 갑자기’란 뜻의 ‘다따가’라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선을 거쳐 올라온 쟁쟁한 출연자들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배경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북한에서 대학을 다니며 익힌 순수한 우리말을 쓰는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사용한 덕이었다. 게다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는 데 적잖이 당황해 혼자 열심히 우리말을 익힌 탓도 컸다.

“남북의 언어 차이 중 제일 헛갈리는 것은 ‘오징어’와 ‘낙지’를 서로 다르게 부른다는 점이었어요. 북한에서는 남쪽의 ‘오징어’를 ‘낙지’라고 불러요. 한창 여름에 바닷가 사람들은 낙지(남; 오징어) 철이 되면 한해 양식거리를 마련하느라 말 그대로 피 말리는 전쟁을 합니다. ‘낙지 잡이가 사람 잡이’, ‘낙지 말리기가 피 말리기’라고 말할 만큼 여름 한철은 낙지와의 전쟁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낙지를 자기 손으로 잡고 말렸으면서도 정작 변변히 먹어보지 못한 탓인지 새터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도 마른 오징어랍니다.”

권 씨는 ‘우리말 겨루기’의 우승 비결에 대해 “한마디로 우리말의 고유어를 많이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미국에 대한 배척으로 외래어를 전혀 쓰지 않아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도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있어 우승한 실력이 우연은 아닌 듯.

그런 덕분인지 스스로도 남한 생활에 적응하는 속도가 무척이나 빠른 편이라고 밝혔다. 권 씨는 지난달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공무원 실무적응교육’ 때문에 “직장 적응 및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하니까 저도 눈치로 배워 가며 일하는 방법을 터득했지요. 하지만 교육을 받고 난 이후 더욱 공고히 알게 됐고, 잘못 안 것을 새로 인식하게 되어 고마웠습니다.”

권화옥 씨의 업무는 북한이탈주민 상담 등 북한 관련 일과 세무행정 보조 등 점차 그 역할이 넓어지고 있다. 그만큼 노력하면 남북한 사람의 격차가 없다는 뜻이다. 주변인들은 북한 출신 공무원들의 높은 집중력이 장점이라는 의미심장한 귀띔도 해준다.

권 씨는 “자신의 능력이 머리 좋은 집안 탓만은 아니에요”라며 “북한이탈주민도 같은 한민족으로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만 인정하지 않아서 탈이지…”라고 말미에 뭔가 아쉬운 사족을 붙였다. 또한 “북한 출신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북한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해요. 결국 소통이 많이 필요한 거죠”라며 그동안의 불편했던(?) 속내를 털어놨다.

“남편은 노동당 과장으로 남한의 웬만한 시장보다 더 힘이 셌지요. 그런 탓에 어려움 없이 잘 살았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사는 게 어려워져 북한을 탈출했어요. 다행히 특혜로 여권이 있어 쉽게 중국에 입국했지만 저 역시 남한으로 올 때 힘들었지요.”

권 씨는 북한에서 나름대로 상위층에 속해 남한 실정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7살 때부터 예능계에서 활동한 이후 아나운서 생활을 하다 보니 북한의 선전을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권 씨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데 대해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 대개의 북한이탈주민들이 얼굴 팔리는 것을 겁내는 반면 그녀는 정반대의 경우이다. 용기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그저 무덤덤한 편이다. 비록 남편은 사별했지만 북한에 어머니, 언니, 오빠, 동생 등 일가가 남아 있어 마냥 자유로운 것이 아닌데도….

“어차피 알려지든 안 알려지든 북에서 사는 것은 다 똑같아요. 잘되든 못되든 감옥살이하는 거, 한 명이라도 더 나서서 북한에 대해 많이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었어요.”

그녀의 체념한 듯한 말투에 가늠하기 힘든 아픈 상흔이 배어 있다. 이에 대해, 교육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도 “갈등을 극복하고 나선 용기가 기특하다”며 “권 씨의 경우는 드물다”고 조언했다.

“2000년대 들어 나진무역협정에 따라 중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북한사회에 남한의 현실이 알려지게 되었어요. 저도 나진 친척집에 우연히 갔다가 남한의 비디오를 처음 보고 놀랐지요. 처음에는 예술이라 생각했지만 차츰 그런 남한 문화를 접하면서 그동안 속아 온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권 씨로 하여금 북한을 이탈하게 한 동기는 남한의 드라마 비디오였던 것이다.

그녀는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서울대생 아들을 통해 위로받고 있다. 북한에서 배운 내용이 틀리는데도 불구하고, “수원고등학교에 편입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전교 10등 수준에 오른 아들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로지 아들 하나뿐, 더 이상의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앞으로 5~10년 안에 통일이 되지 않을까요?”

그야말로 ‘다따가’ 청천벽력 같은 말이지만, 그녀의 통일에 대한 희망은 무척 가까운 데 시점이 잡혀 있었다. 물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깊은 곳에 중증환자처럼 묻혀져 있을 터.

“지난 9일 효원공원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김문수 도지사님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나 혼났어요. 그동안 탈북동포의 강제 송환을 반대해 온 지사님의 마음에 감복(感服)했습니다.”

권 씨는 요즘 사회적인 화두가 된 중국에 억류된 북한이탈주민의 북송 문제로 가슴이 얼얼하다며 마지막으로 김문수 도지사에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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