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생전에 저희 3형제에게 재산을 증여하시면서 나중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큰형에게 돌아간 재산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큰형에게 억울함을 주장하니 아버지 생전에 합의된 사항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이미 증여재산 분배에 대해 합의를 했다면 유류분조차 주장할 수 없나요?”

부모 생전에 이뤄진 재산증여로 상속인 사이에 갈등을 빚는 일이 심심치 않게 생긴다. 모든 상속인에게 재산이 공평하게 증여된 경우와 달리 불균등 증여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라는 내용이나 ‘상속 포기’와 같은 각서를 작성했다면 상황은 간단치 않다.

7일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유튜브 채널 ‘법도TV’를 통해 “법적 분쟁에서 합의는 강력한 효력을 갖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면서도 “다만 합의된 각서나 공증이 언제 작성되었는지에 따라 법적인 효력 유무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상속문제에서는 상속권이 개시된 시점(아버지 사망시점)을 기준으로 각서나 공증 효력이 판단된다”고 부연했다.

민법 제997조에는 ‘상속은 사망으로 인하여 개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재산을 물려줄 부모, 배우자가 사망해야 상속인들에게 상속권이 생긴다는 말.

만약 규정과 달리 상속권이 발생하기 전 증여재산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법적인 효력은 인정될까? 법률상 상속재산에 대한 합의는 상속권이 생기기 전이라면 법적인 효력이 없다. 다시 말해 아직 상속권이 생기지도 않은 시점에서 상속재산에 관한 합의를 한다는 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

엄 변호사는 “따라서 아버지 생전에 이뤄진 증여재산에 대한 합의는 각서나 공증이 있더라도 상속권이 없는 시점이기 때문에 합의 자체가 무효인 셈”이라며 “이 경우 상속 포기 각서를 작성할 때도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상속권이 발생한 후 작성된 상속재산에 관한 합의나 포기 각서는 어떨까. 이 경우 이미 상속권이 발생한 이후기 때문에 법적인 효력이 있다.

엄 변호사는 “가령 유류분조차 받지 못한 상속인이 상속권이 발생한 직후 상속 포기 각서를 작성했다면 최소한의 상속재산마저 받지 못한다”며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류분제도란 법이 정한 최소 상속금액을 말한다. 형제가 두 명만 있는 경우 원래 받을 상속금액의 절반이 유류분이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총 2억일 때 상속금액은 각각 1억 원씩이고 유류분 계산으로는 그 절반인 5000만 원씩이다.

유류분청구소송은 돌아가신 분 유언에 따라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를 상대로 나머지 상속자들이 유류분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이다.

한편 아버지가 사망한 후(상속권 발생 후) 상속 포기 각서를 작성했지만, 유류분 권리자가 몰랐던 증여재산이 발견된 경우는 어떨까.

유류분은 권리자가 증여재산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느냐가 중요하다. 즉 유류분 권리자가 상속을 포기한다는 말은 자신이 알고 있던 재산범위 내에서만 포기한다고 합의했을 뿐 몰랐던 재산은 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유류분 권리자가 몰랐던 증여재산이 발견된다면 그 재산에 대해서는 유류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엄 변호사는 “상속에 대한 각서나 공증 효력은 상속권 발생 시점에 따라 결정되지만, 피상속인(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한 ‘증여’나 ‘유증’ 자체는 자신의 재산권 행사이기에 무효가 될 수 없다”며 “재산을 받지 못한 상속인은 이에 대해 유류분 권리만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움말 엄정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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