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 혐의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신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사고 후 미조치)에 대하여만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사고 다음 날 경찰서에 출석하여 음주측정을 받은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이었음을 판결 이유로 밝혔다.

신호등을 들이받은 후 사고 수습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고 의료진은 그 연예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술 냄새가 났다는 증언을 일관되게 했다. 사고 직전 술자리에 있었다는 점도 밝혀졌으며 술자리에서는 지인과 동석해 소주 6병과 맥주 9잔을 주문한 사실이 확인됐다.

네티즌들은 재판결과가 나온 후 다음과 같은 댓글을 많이 올렸다. ‘좋은 판결 감사합니다. 저도 다음에 음주운전 사고를 내면 일단 도주했다가 며칠 후 자수할게요. 그럼 혈중 알코올 농도 0으로 무죄판결 받을 테니까요.’

씁쓸하고 안타깝고 분노가 생긴다. 문득 작년의 그 유명한 ‘크림빵 뺑소니 판결’을 떠올리게 된다.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일명 ‘크림빵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30대가 작년 3월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뺑소니 혐의는 인정되었지만 끝내 음주운전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음주운전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이유는 이번 유명 연예인 건과 동일하다.

즉, 대법원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전제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 음주운전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로 판단했던 것이다.

사건 발생 19일 만에 피고인은 자수했다. 19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자수한 피고인의 음주운전 혐의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그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법정에서는 증거를 가지고 다툰다. ‘증거주의 재판 원칙’은 언제 어디서나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수사기법과 증거 채집능력이 발달하여도 과학적으로 입증해낼 수 있는 시간적 한계의 선이 넘어가버리면 신이 아닌 이상 범죄혐의를 완벽히 밝혀낼 수 있는 이는 전무하다.

본 사건은 피고인이 사고 당일 소주 4병을 특정 장소에서 특정의 인들과 마셨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동료 직원들 또한 피고인의 음주사실을 인정하였다. 즉, 본인의 자백과 그 자백을 보강하는 동료들의 인정진술이 존재하는 것이다.

과도한 자책감으로 있지도 않은 음주사실을 일부러 상상해냈을 리는 만무하고 사람을 치어 사망케 하고 도주까지 할 만큼 정상적인 판단을 불가하게 만든 음주사실은 말 그대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해 보인다.

음주운전 사고 후 시간이 경과되어 운전자가 술이 깨어버렸거나 한계 수치 이하인 경우에 몸무게와 경과 시간을 대입하여 음주운전 당시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는 ‘위드마크’ 계산법이 공신력 있는 증거로 인정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당사자의 음주 자백과 주변인의 사실 인정 진술이 존재하는 이상 혐의 전제사실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정도까지 (100%까지는 아니지만) 입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증거에 의하지 아니하면 죄를 묻지 않는다는 ‘증거주의’ 원칙은 옳다. 허나 어떤 상황에서나 그 ‘증거주의’만 고집하게 되고 일부 증거로 유죄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자질이 부족한 판사라 인식되면서, 100% 혐의가 입증될 수 없을 경우에는 무조건 무죄판결을 내려야 공신력 있고 합리적인 판결이 된다는 사법부 내 ‘판결론에 관한 이분법적 다수론’이 확산되고 있음은 분명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 ‘이분법적 다수론’이 사회의 진정한 정의실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여러모로 아쉽다. 대법원 판결은 향후 수많은 1,2심의 판례(判例)로 작용한다. 사고를 냈어도 음주측정 가능 시간대만 벗어난다면 음주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이번 판결 후 확산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음주 교통사고가 갈수록 늘고 있는 이 시기에 ‘크림빵 뺑소니 사건’은 그 어떤 뺑소니 사건도 강력한 수사의지와 국민적 연대만 있다면 묻히지 않는다는 좋은 교훈을 보여주었다. 그 강력한 수사의지와 국민적 관심, 그리고 언론의 심층보도가 있었기에 피고인은 자수와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은 엄중처벌 및 정의실현을 고대해왔다.

엄중처벌과 정의실현을 고대해 온 국민들에게 씁쓸함과 분노를 안겨 준 음주운전 무죄 판결. 자백을 하고 동료들의 목격 진술이 있어도 도주 후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이면 무조건 무죄판결을 받는 이 사실에 대하여 대체 국민의 몇 퍼센트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도 한해 교통사고로 숨진 한국인은 5913명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었다. 주된 원인은 당연히 한국인의 높은 음주운전 비율 때문이다.

음주운전과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계도·홍보는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예방적 계도·홍보 못지않게 사후 처벌의 적정성도 실현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은 분명 일어나고 또 일어난다. 본인의 자백 및 주변인의 목격 진술이 있는 경우에는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이 내려질 수 있어야 하고 그와 함께 음주운전 및 뺑소니 죄에 대하여는 법 개정을 통해 형량을 더 한층 높여야 한다.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헌법 제12조 제7항과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는 형사소송법 제309조.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는 범죄사실의 전부 또는 중요부분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아니하더라도 피고인의 자백이 가공적인 것이 아닌 진실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만 되면 족할 뿐 아니라 직접증거가 아닌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도 보강증거가 될 수 있으며, 또한 자백과 보강증거가 서로 어울려서 전체로서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면 유죄의 증거로 충분하다는 판례.

새벽이라 차량흐름이 빈번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정상적인 의식과 판단력에 의지하였더라면 사람을 칠 가능성이 거의 없고, 과도한 음주 후의 운전으로 판단이 흐려져 사람을 치어 사망까지 이르게 하고 음주운전 가중처벌이 두려워 도주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점. 자유의사에 의하여 자백한 사실. 그리고 음주 장소와 시간대 및 음주량까지 정확히 기억하여 자백하는 피고인과 이 자백을 보강하는 동료들의 진술. 그런데도 음주운전은 무죄로 판단되어 징역 3년.

법은 만인을 위한 법이 되어야 하고 그 법 적용에는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세계에서 불가하다면 법이란- 법을 잘 지키는 99.9%의 선량한 일반 시민을 위한 방향으로 제정되고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크림빵 뺑소니 판결도 그렇고 이번 유명 연예인의 음주운전 무죄판결도 그렇고 갈수록0.1%를 위한 법적용과 판결이 느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AN  SANG  HYEON /전 한 국 어 교사. 현 범죄예방 봉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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